요즘 시골에 다녀보면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이 야생밤과 도토리다. 야생밤과 도토리도 잘못 채취하면 곤혹을 치르기 십상이어서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지난달에는 남원 아영면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했다. 지리산 IC 앞에 있는 휴게소에서 출발, 아영 소재지를 거쳐 연분홍 철쭉으로 유명한 봉화산까지 왕래하는 코스였다. 지대가 높은 백두대간 산자락에 위치, 도로들도 오르내림을 반복했다.
봉화산 급경사 진입로가 있는 남원 아영과 장수 번암의 경계인 복성이재에 가까이 가자 도로에 밤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일부는 오고가는 차량 바퀴에 으깨져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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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 ||
이제 막 떨어진 것 같은 싱싱한 밤송이도 보여 나도 모르게 자전거에서 내려 발로 비벼 밤알을 꺼냈다. 멀리 마을도 보이는 지역이었지만 도로에 떨어진 것이라 별다른 부담은 느끼지 못했다.
떨어진지 오래된 밤송이도 있는 것을 보면 특별히 관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밤송이 세 개 정도를 깐뒤 자리를 떴다. 욕심을 내기로 하면 한이 없을 것 같아서다.
지난주에는 남원 주천면에 있는 구룡계곡을 찾았다. 지리산서부관리소 앞에서 출발했는데 이달부터 탐방예약제를 실시한다는 플레카드가 걸려있었다.
탐방객들이 많은 때문인지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예약을 하지 않고 찾았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특별한 제지는 없었다.
구룡폭포까지 3.4킬로미터 거리인데 구곡이라 해서 아홉 곳의 명소가 유명한 계곡이다. 일반인은 구룡폭포까지 보통 걸음으로 한시간 반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절벽이 하늘로 치솟았다는 지주대가 있는 곳에서부터는 급경사가 시작됐다. 나무계단도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발 앞을 주의하면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데 작은 도토리가 마치 땅콩을 뿌려놓은 것처럼 깔려있었다. 그 양이 너무 많아 세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아마 국립공원 구역이라 함부로 채취할 수 없기 때문인 듯 보였다.
전주 체련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건지산에는 곳곳에 ‘다람쥐가 배고파요 밤과 도토리는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쓰인 플레카드가 걸려있다. 산에 오르내리는 주민들이 밤과 도토리를 마구 주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체련공원에는 하루에도 수천명씩 시민들이 오르내린다. 그 많은 사람들이 밤과 도토리를 주워간다면 다람쥐도 멋잇감 걱정을 해야 할 듯싶다. 물론 주민들이야 재미삼아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시골지역에도 야생밤이나 도토리 등을 무단 채취하지 말라는 경고성 플레카드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민형사 책임도 묻겠다는 엄포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을이 오면 야생밤이나 도토리 채취꾼들이 극성인 모양이다. 산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곧잘 야생밤이나 도토리 채취에 나서곤 한다. 오랫동안 심심풀이로 해오던 일이기도 한 것이다.
다람쥐는 가을철에 도토리를 모아 저장했다가 겨울을 나는 것으로 알려진다. 모아놓은 도토리가 부족하면 겨울나기가 그만큼 어렵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도토리를 놓고 지금 인간과 다람쥐가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은 100년만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올 겨울도 몹시 추울 것이라는 예보다. 눈이 많이 내릴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마다 다가올 추위에 대비해 창문을 정비하는 집들도 눈에 띈다.
속담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추운 겨울보다 무더운 여름이 낫다’고 했다. 짐승들의 세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릴 경우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굶어죽는 동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일부 시골지역 주민들은 그런 짐승들을 위해 집 주변에 먹을 것을 내다놓기도 한다.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먹잇감이 부족한 멧돼지나 고라니 등이 민가를 침입했다는 뉴스도 있다. 사람들의 무차별적인 임산물 채취가 불러온 현상이라고도 한다.
야생밤과 도토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심심풀이 먹을거리지만 다람쥐에게는 부족하면 굶어죽는 주식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남원 아영의 널부러진 야생밤과 주천 구룡계곡의 도토리 천지가 제격이란 이야기다. / 박장우 주필
박장우 주필 jbpost2014@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