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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1. 꾀병

기사승인 2019.10.08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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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

  박준 시인은 소탈한 사내였다. 요즘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시인이라는 데 그는 겸손했고 술자리에서도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이런 품성을 빼닮은 그의 시는 어떤가. 일상의 구김을 곡진하게 펴 보이는 시편들은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을 아프게 하는 사연까지 위로해주지 않던가.  

   

   
박준 시인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일 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꾀병」 전문, 박준(1983-)

 

  목련꽃같이 큰 귀걸이를 한 애인을 두었어도 ‘나’는 열병을 앓고 있다. 며칠 괜찮다가 유서(遺書)도 못 쓰고 사흘씩 앓을 때마다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할 정도로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기도 했다. 자신이 말한 유언을 읽어보듯 미인의 얼굴에 비친 볕을 만져보는 데서 시상은 더없이 고요해진다.

  이 시의 눈은 ‘나’가 볕을 만지는 행위이다. 병을 앓는 동안 자신이 한 행위 중 가장 살맛났던 지점도 애인의 얼굴에 비친 볕을 만져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 시는 낙관적 절망을 만난다. 몸이 아파죽겠다는, 제발 좀 살려달라는, 비관적 절망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아파주겠다는 듯, 병(病)에 맘 놓고 무너져버리겠다는 듯, 목숨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듯한 태도가 그것이다.  

  시상(詩想)이 굴곡진 일상으로 번지는 현상은 드문 일이다. 개인의 뜻과 의지가 갈수록 옹색해지는 불평등한 세상- 삶의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집단적 획일주의에 찌든 세상에서는 더 그렇다. 시의 욕망과 일상의 욕망이 다를지라도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 거기에 비친 볕을 만지는 행위는 빛난다. 오늘을 견디고 있는 모두의 희망이 반짝이기 때문이다.  /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 시인

이병초 jbpost2014@hanmail.net

<저작권자 © 전북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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