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국화 옆에서' - 횡설수설
이번 글은 횡설수설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난 서너 주 동안 내 마음이 시끌벅적했기 때문이다. 물론 평정심을 잃지 않은 깔끔하고 정교한 글이 나오면 좋겠지만 때때로 솔직한 심사를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울퉁불퉁 들쭉날쭉하더라도 인간의 마음이려니 이해해 주면 좋겠다.
가급적이면 나는 마당의 식물들에 관한 글을 쓰면서 자연의 질서나 순리에 따르고자 했다. 인위적이지 않고 억지로 꽃피우지 않은, 제철 화초나 나무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연이 하는 일은 내 마음과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맞을 턱이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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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의 뉘앙스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내가 살아온 과정이 들의 풀이나 꽃에 친근했기 때문이리라. 하여 거칠거칠하더라도 오래 견디는 것들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본문 중에서> | ||
꽃이 절정에 이를 시기라고 여겨져 글을 완성해 놓으면 시기상조이거나 뒷북칠 경우가 많았다. 때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국화는 만개할 시기를 맞출 것만 같다. 국화꽃이 이제야 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화분 속 꽃들에 익숙한 이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의 뉘앙스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내가 살아온 과정이 들의 풀이나 꽃에 친근했기 때문이리라. 하여 거칠거칠하더라도 오래 견디는 것들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사람의 손을 탄 식물들은 잠시 눈 호강에 그치고 말았다. 불안해 보였던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서로에게 윈윈하는 길인가. 일단 우리 집 마당이 노지인 것은 맞지만 식물들 거의가 관상용과 원예용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뒷마당의 국화는 한두 번의 개량을 거친 것 같다.
M.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의 첫 문장에서 “삶은 고해다.”라고 했다. 과연 인간의 삶만 그러하겠는가. 내가 썩 좋아하는 시인은 아니지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시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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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 속의 국화> | ||
이 시는 비단 국화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 위해 겪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담고자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많은 생명들에 비유하였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하겠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가 나는 약간 껄끄럽다.
추측하건대 저 누님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것 같다. 긴 시간 인고하고 풍상을 견뎌낸 웬만큼 안정된 중년? 나? 왜 하필 여성(누님)이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중년이 된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며 어떤 꽃도 피워보지 못했다. 차라리 스캇 펙의 말이 훨씬 가깝다. 내 삶은 여전히 고해의 연속이다.
때대로 나는 경계를 오가며 살았다. 과거와 현재, 남자와 여자, 부와 빈곤, 참과 거짓, 보수와 진보, 종교와 진화, 이타와 이기 등의 양분법속에서 충돌하였다. 미로 속이었다. 나의 선택에 잘잘못이 있다면 그때그때 관조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바쁘고 바빴다. 서둘러 보았으나 발 빠르고 영리한 사람들의 뒤꽁무니에 미칠 수 없었다. 혼돈과 충돌 속에서 보낸 지나간 시간... 아직도 나는 「국화 옆에서」 횡설수설 변명하고 있다.
우리 집 뒷마당의 국화를 보고 놀란 어릴 적 친구는 볼멘소리를 한다. 꽃집에서 반절 이상 피어있는 국화를 사다가 아파트 베란다에 갖다 놓으면 곧장 죽고 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몇 번이나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사지 않겠다고 다잡아 보지만, 꽃집 앞 화려한 유혹을 지나치지 못한단다. 이번에도 역시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무슨 이유냐고 묻는다. 아마도 영양제나 화학비료를 주었는가 보다며 불만이 어지간 많은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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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다 보여주지 못한 청화쑥부쟁이> | ||
우리 집 국화는 청화쑥부쟁이보다 열흘 가량 늦게 피었다. 품종의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노지는 거의 그랬다. 시중의 그것들보다 한참 늦었다. 둘 다 덩치는 황소만 하고 꽃이 다글다글 했지만, 요란하지도 않다. 식물도 그렇더라. 수령이 오래됐거나 큰, 나무와 화초들의 자태(몸)는 품위 있고 멋들어진데 비해 열매와 꽃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영양분이 몸을 유지하고 보호하는데 쓰였는지 작으면서 볼품이 덜했다. 자연의 이치일까. 나만의 해석인가.
아직도 내 속은 두엄자리다. 내 마음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존재들이여. 당신들도 언젠가 중년이 되고 늙어갈 것이다. 젊은 그때 나도 국화꽃 닮은 누님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나는 한사코 거부한다. 겉모습만 누님일 뿐,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내 마음 만져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밤 무서리가 내릴 것만 같다. 그간의 무수한 수고를 폭삭 주저앉힐까 걱정스럽다. / 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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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현옥 전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 ||
JB포스트 jbpost2014@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