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나는 나다 !
이 집으로 이사한 지가 만 2년이 되었다. 첫 해 겨울 우리 집 마당은 텅텅 비어 있었다. 희끄무레한 모래흙은 맞바람에 황량한 먼지를 일으켰다. 집들이에 온 몇몇 손님들은 이러쿵저러쿵 말씀들을 거들었다.
남편의 한 친구는 창문 너머 을씨년스런 마당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심지 말고 가만 놔두면 좋겠단다. 무심한 저 색깔이 이쁘다고 했다. 그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희한한 사람이었다. 마당이 이것저것으로 채워질 때마다 가끔 그의 말이 떠오른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그 친구는 우리 집에 들른 적이 없다.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은 마당도 거무튀튀해졌고, 잡초까지 보태어져 빼곡히 채워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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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에서 남쪽으로 옮겨 심은 어린 남천. | ||
그렇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다. 겨우내 나는 텅 빈 앞뒤 마당을 조감하며 시간을 보냈다. 철철이 피울 꽃들과 푸르른 나무들을 상상하면서, 이것저것 뒤져 공부를 했다. 어서 겨울이 가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와 달라서 채워야 맛이 나는 작자이므로 빈 공간을 가만 놔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드디어 봄이 왔다. 키가 20cm나 될까, 고산 다녀오는 길목에서 붉은빛이 감도는 남천을 그루당 천 원씩 30여 그루를 샀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동쪽에 울타리 대용으로 주욱 심었다. 솔직히 남의 눈을 의식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쪽에는 웬만큼 가격이 나가는 것으로 그렇지 않은 곳에는 값이 싼 것으로, 키워보다가 죽더라도 섭섭하지 않은 것으로, 재미를 보자고 그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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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천은 힘이 세다. | ||
그런데 해도 너무한다 싶을 만큼 남천은 자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디게 큰다는 말씀을 들어보셨는가. 그것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으니 심은 지 2년 가까이 되어가도 달라진 게 없었다. 단, 한 그루도 죽을 기색 또한 비치지 않았다.
지난 가을 나는 결단했다. 우리 집의 동쪽과 서쪽에는 나의 신경을 자극하는 눈동자들이 있다. 잠깐 오가는 동안에도 옆얼굴이 불편해질 때가 있어서 그들의 시선을 차단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또 궁리를 했다.
동쪽의 작은 남천 십여 그루는 현관 앞 남쪽으로 옮기고, 큰 남천을 새로 사들여 동쪽과 서쪽의 틈새를 막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이번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돈을 좀 들여 큰 남천 십여 그루를 심었다. 못마땅했던 눈엣가시가 당장 사라진 것 같았다. 비로소 든든해졌다. 역시 나는 채우고 막아야 편안해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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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녘 서쪽 모습. | ||
지난주에 유럽을 다녀왔다. 그곳의 바람은 뼛속을 후벼 팠으며, 볕이라고는 몇 시간도 비추질 않았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로드 무비 <안개속의 풍경>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이제 나는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싫다. 젊은 시절 낭만이라 여겼던 풍경들이 가슴에서 멀어져 간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그나마 우울감을 떨치게 만든 것은 넓은 들판의 푸르른 목초들이었다.
특히 내가 관심 있는 보통의 주택들은 단순했고 작은 마당에 담장들은 아예 없거나 내 허리만큼 오는 크기의 가지런한 나무로 경계표시를 시늉만 해놓았으며, 잔디 위에 상록수 한두 그루, 누렇게 변한 한 무더기의 목수국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어느 틈에 꽃들이 폈다가 졌는지, 보고 또 보아도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은 하얗고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정성을 들인 표시가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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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 좋은 오전 동쪽. | ||
우리 집 마당의 잡다한 종류의 나무들과 꽃들은 내 글과 닮은 것 같다. 이 글을 연재하는 초기에 나는 글을 짧게 쓰겠다고 맘먹었었다. 하지만 내 글은 늘어졌다. 튀르키예의 노벨문학상 작가 ‘오르한 파묵’은 글을 “장황하게 쓰지 않고 줄이기”를 하라고 했으나, 마당도 숨 쉴 공간 없이 무질서 해졌고, 글 역시 간결해지지 않았다.
흔하디흔한 나무에 돈 꽤나 썼다. 그러하더라도 나는 ‘남천’ 심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은 붉은색 일색이고 그 뒤쪽 나무들은 푸른데다 정갈한 편이므로. 무엇보다 머지않아 불편한 몇몇 눈빛들을 가려줄 것이므로.
올 겨울을 나면서 나는 다져야 한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 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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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현옥 전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 ||
JB포스트 jbpost2014@hanmail.net
